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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로 살기/성지순례

[온라인 성지순례] 14. 춘천교구 광암 이벽 요한 세례자 진묘 터와 생가 터, 금광리 공소, 묵호 성당

by 풀꽃향기 2020.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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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를 떠나면서 바치는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떠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친척 엘리사벳을 돕기 위하여 길을 나선
겸손과 순명의 여인 마리아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듯이
지금 길을 떠나는 저(저희)를 돌보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시어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또한 주님께서 언제나 저(저희)와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길에서 얻는 기쁨과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시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믿음, 사랑의 생활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화동로 1079번길 7

 

 

1. 광암 이벽 요한 세례자 진묘 터와 생가 터

 

광암 이벽은 한국 천주교 초기 평신도 가운데 주요 역할을 한 지도자이며, 한국 천주교회는 현재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안건으로 시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벽은 1777년 권철신, 정약전 등과 함께 강학을 하였고, 1784년에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1785년 을사 추조 적발 사건이 발생하자 평소 천주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더 유림들이 반발하였고, 이벽도 가족들에게 배교를 강요받았습니다. 이벽은 자신이 선택한 천주 신앙과 부모에 대한 효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화현리 집에서 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포천 화현리는 이벽의 부친인 이부만부터 그의 증손까지 4대의 묘가 들어선 선영과 이부만과 그 후손들이 살았던 집터가 있는 곳입니다. 이벽의 생가 터는 포천시 화현면 543-1번지로 추정됩니다. 이벽의 묘는 포천시 화현면 산 289-1번지 공동묘지 갓등산 낮은봉에서 1979년 2월 15일 발견되었는데, 그의 유해와 지석은 1979년 6월 24일 천진암으로 이장되었습니다.

 

현재 진묘 터에는 이장 이후 조성된 봉분과 묘비가 있으며, 본래 있던 묘의 진토는 남아 있습니다. 2019년 현재 춘천교구는 포천시와 협의하여 진묘 터 근처에 성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관할: 일동 성당 031)531-5236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평로 514

 

 

2. 금광리 공소

 

금광리 공소는 1887년 설립된 곳으로 강릉 지역 천주교의 모태와 같은 곳입니다. 강원도 영동 지역에 신자들이 거주했다는 것은 1921년 [경향잡지]에 "영동 교우로 말하면 50-60년 전 병인박해 때에 전라, 충청, 경기도 교우들이 피난하기 위해 영동으로 넘어와 근근이 사는 교우들이다"(1921년 9월 호)라는 기록과 드브레(Devred) 주교가 1923년 가을에 이 지역을 방문한 뒤 "병인박해 이후에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는 기록을 남긴 [서울연보] II, 1924년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병인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자들은 깊은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며 교우촌을 형성하였고, 이웃에게 신앙을 전파하며 생활하였습니다.

 

금광리 공소는 한때 영동 지역의 전교 거점으로, 1921년 이철연 프란치스코 신부의 부임과 함께 본당으로 설립될 만큼 신자 수가 많았으나, 향후 신자 수의 증가와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1923년 주문진으로 본당을 이전하여 다시 공소가 되었습니다.

 

현재 금광리 공소는 노암동 본당의 공소입니다. 이곳은 박해를 피해 정착하여 오랫동안 신앙을 지켰던 이들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온 신앙의 터전입니다.

 

관할: 노암동 성당 033)643-8460

미사: 매월 첫째 주 수요일 오후 2시

 

 

 

 

 

강원도 동해시 발한로 161

 

 

3. 묵호 성당 (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

 

1940년 강릉 임당동 본당의 관할 공소로 설정되어 시작된 묵호 성당은 해방 뒤에 묵호 해군 사령부의 군종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하였습니다. 이 곳은 1948년에 본당으로 승격되었지만 아직 성전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대 주임인 한 프란치스코(Francisco McGann) 신부는 묵호항 부근의 일본식 가옥에 임시 사제관을 마련하고 미사를 집전하면서 사목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듬해인 1949년 9월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가 부임하였습니다. 한국 전쟁 중 공산군이 성당을 점령하자 당시 전교 회장의 집에 잠시 피신했지만 결국 체포되어 강릉으로 이송 도중 밤재굴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이후 전쟁으로 본당에 사제가 파견되지 못하였습니다. 

 

교우들은 양들을 두고 피신할 수 없었던 착한 목자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서 본당 마당에 순교비를 세웠으며 시복시성을 위해서 열심히 긱도하고 있습니다.

1954년 삼척 성내동 본당(1965년 교구 분리에 따라 현재 원주교구 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으며, 1957년 6월 현재의 위치에 성당 건물을 준공하고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미사 >

주일: 오전 6시 30분, 10시 30분, 오후 7시

월: 오전 6시 30분

화,목 : 오후 7시

수,금 : 오전 10시

토: 오후 4시, 7시(첫 토요일 오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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