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를 떠나면서 바치는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떠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친척 엘리사벳을 돕기 위하여 길을 나선
겸손과 순명의 여인 마리아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듯이
지금 길을 떠나는 저(저희)를 돌보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시어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또한 주님께서 언제나 저(저희)와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길에서 얻는 기쁨과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시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믿음, 사랑의 생활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1. 소양로 성당 (순교자 고 안토니오 신부)
살신성인 기념 성당인 소양로 성당은 1950년 1월 5일 죽림동 성당에서 분가되었으며, 한국 전쟁에서 순교한 고 안토니오(Anthony Collier) 신부를 기념하는 성당입니다.
고 안토니오 신부는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성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신자들에게도 피신하라고 권고하며 사태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6월 27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공지천변으로 끌려가면서 함께 잡혔던 복사 김경호 가브리엘에게 총격이 있으면 얼른 엎드리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마침내 총격이 시작되자 고 신부는 그를 끌어안고 넘어져, 자신은 죽음을 맞으면서도 다른 이를 살리는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현 성당은 1956년에 지어졌습니다. 당시 교구장 구인란 토마스 주교는 한국 전쟁으로 순교한 사제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 곳(소양로, 삼척, 묵호)에 성당을 신축하였는데, 그 중 소양로 성당이 첫 번째로 건축되었습니다.
당시 건축된 대부분의 성당이 고딕 양식인데 비하여 소양로 성당은 반원형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이는 유럽에서도 1960년대 이후에 드물게 나타나고,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형태였습니다. 소양로 성당은 그 역사성과 건축학적 의미가 높이 평가되어 2005년 4월 15일 국가 등록 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미사 >
주일: 오전 7시, 10시 30분, 오후 7시 30분
월: 오전 6시 30분
화, 목: 오후 7시 30분
수, 금: 오전 10시
토: 오후 6시(첫 토요일 오전 10시)

2. 순교자 라 파트리치오 신부 순교 터
라 파트리치오(Patrick Reilly) 신부는 1940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고 1947년 입국, 1949년 묵호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습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신자들이 배를 마련하여 피난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라 신부는 "양들을 버리고 목자가 혼자 도망갈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공산군이 쳐들어오자 당시 전교회장의 집 뒷방으로 피신하여 몰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라 신부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매질을 당하며 끌려갔습니다. 그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묵호에서 강릉으로 이송되던 중, 공산군에 의해 밤재굴에서 총살당하였습니다. 라 신부의 유해는 1951년 10월 11일 죽림동 성당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하였습니다.
이후 묵호 성당 신자들은 라 파트리치오 신부의 순교와 얼을 기리기 위하여 신부의 유해를 수습한 장소인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산 16-2번지에 순교비를 세우고, 도보 순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교비가 영동선 터널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기차 운행으로 인한 위험 때문에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산 47-3번지에 새로 성지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관할: 묵호 바다의 별 성당 033)535-8455

3. 양양 성지 (순교자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
양양 성당은 1921년 4월 영동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본당으로, 최문식 신부가 상도문리에 경당을 세운 것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38선 이북에 위치하면서 한국 전쟁을 겪은 양양 성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이광재 신부입니다.
이광재 신부는 1909년 강원도 이천군 낙양면 냉골에서 태어나 1936년 3월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는 풍수원 본당의 보좌로 사목을 시작, 1939년 7월 양양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이광재 신부는 해방 뒤 38선 이북이 공산화되면서 종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무사히 넘어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양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월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북강원도 평강과 이천 본당에서 사목 하던 신부들이 체포되자 이 지역까지 다니며 사목활동을 하였습니다. 이광재 신부는 1950년 10월 9일 새벽 원산 방공호에서 인민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서도 피 흘리는 주변의 사람이 물을 달라고 하자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외치며 순교하여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춘천교구는 2000년부터 티모테오 순례길을 조성하여 매년 10월 9일 이광재 신부의 순교일에 38선 도보 순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도보 순례 길 문의 : 033) 671-8911)
< 미사 >
주일: 오전 6시 30분, 10시 30분, 오후 7시 30분
월: 오전 6시 30분
화, 목: 오후 7시 30분
수, 금: 오전 10시
토: 오후 4시, 7시 30분, 9시
첫 토요일: 오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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