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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로 살기/성지순례

[온라인 성지순례] 4. 대전교구 황새바위순교성지

by 풀꽃향기 2020.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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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는것을 시기하는듯 요 며칠 정말 많이 춥네요

한겨울 보지못했던 눈내리는 모습도 오래간만에 실컷 보았습니다.

지난주에 마산교구에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역시 겨울에는 스산함을 감출수가 없더군요

어서 따뜻한 봄이 와서 성지에 푸르름을 함께 보면서 기도하고 싶네요

오늘은 대전교구의 황새바위순교성지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대전교구에는 정말 많은 성지가 있고, 순례객들이 좀더 수월하게 순례를 할 수 있도록 정비가 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지가 순교성지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뜻깊기도 하지요

충청도라는 특성상 각 지역에서의 접근성도 좋아서 많은 신자들이 찾고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거주하고 있는 대전에서는 시외버스로 30분정도만 이동하면 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공주에 있는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조선 천주교회 박해 역사 100년 동안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된 장소로

이름이 확인된 순교자가 337위에 이르고, 무명 순교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주는 조선 시대에 충청 감영이 있던 중심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충청도 전역의 신자들은 체포된 다음 배교하지 않으면 공주로 압송되어 최종 문초 고문 판결 처형되었고, 다른 지역의 신자들도 공주로

보내 최종 형을 집행하였습니다.

황새바위순교성지에서 기려야할 순교자로는 병인박해 때 향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있고,

신유박해 때 참수 치명한 내표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순교자가 있습니다.

또한 124위 복자 이국승 바오로, 김원중 스테파노, 청양 정산에서 순교한 이도기 바오로가 있습니다.

황새바위순교성지는 충청남도 문화재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지 안에 성당과 성제 조배실이 있고, 언덕을 오르면 십자가의 길, 성모동산, 순교 탑,

무덤 경당, 부활경당, 묵주 기도의 길이 있습니다.

또한 맞은편에는 둘러서서 순교자들의 처형 장면을 지켜보던 공산성이 있는데, 

백제 왕도의 성곽인 공산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 황새바위 순교성지에서 순교한 사람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내포의 사도'로 존경받는 단원 이존창과 손자선, 이성삼 등 확인된 순교자만 200여명이며, 미확인자까지 합하면

거의 1000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00년대 각 지방에서 잡힌 사학 죄인들이 숱한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았을 때

충청도의 감영이 있던 공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다시 배교를 강요당한 후 그래도 배반하지 않으면

감사의 명에 의해 사형대에 올랐습니다.

 

 

죄인들의 공개 처형지였던 이곳 황새바위는 황새가 서식했던 곳이기에 황새바위라고도 하고,

죄수 목에 씌우는 칼이 황새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곳에 있던 바위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인 항쇄 모양으로 생겼고, 죄인들이 이 언덕 바위 앞으로 끌려나와 죽어 갔으므로 항쇄 바위라고도 합니다.

 

 

1980년 황새바위 성역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이후 천주교단에서 부지를 매입하였고,

1985년 순교자 248명의 이름을 새긴 무덤경당 및 순교탑을 건립하였으며, 

1984년이후 성지 담당 사제도 부임하고 있습니다.

주일미사는 오전 11시에 있으며

평일미사는 오전11시에 있습니다. (월요일은 9시30분)

순례객들은 이곳 성지에서 식사가 가능합니다.

단, 사무실에 반드시 예약을 하셔야하니 꼭 참고바랍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열두개의 빛돌이 나옵니다.

이 돌들은 열 두 사도를 상징하며 동시에 이 곳에서 순교하신 337명과 수많은 무명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비석입니다.

그래서 아무 이름도 쓰여있지 않으며 투박하고 거친 모습 그대로 서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춧돌인 열두 사도와

한국 천주교회의 주춧돌인 순교자들의 모습이 이 돌 안에 담겨있습니다.

또한 투박하고 거친 돌덩어리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열두개의 빛돌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지어내신 하느님 아버지께 조금 더 다듬어 주시기를, 단련시키며 정화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그 옆에 위치한 무덤경당입니다.

예수님의 돌무덤을 형상화한 무덤경당은 죽음과 부활이 함께 공존하는 곳입니다.

돌무덤은 죽음이라는 종말과 부활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라는 성경 말씀처럼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 살아계시는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경당입니다.

 

 

 

부활경당은 단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영원한 부활의 진리를 노래하는 경당입니다.

경당 안에는 4000여점의 백자 도자기 평판 벽화 작품들이 모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저 흙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색을 입고, 색을 입은 흙이 1250도의 뜨거운 불에 의해 재탄생되어

각각의 의미를 담으며 환희의 찬가를 부르는 순교자들과 신앙인들의 마음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야외제대(337호칭기도)

부활 광장에는 큰 돌 제대와 12개의 거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제대 돌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서 황새바위의 가치를 기리기 위해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12개의 거석들은 12사도와 순교자들을 상징합니다. 거석 뒤에는 337위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성모동산

1846년 11월2일 한국교회의 제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님과 다뷜리 안 안토니오 신부님은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 작은 오두막집에서 몇 명의 신자들을 모아 '성모성심회'를 조직하고, 

나흘 뒤 그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 승리의 성모 대성당 주임신부(성모성심회 창설자)에게 보고를 하여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성모성심회'라는 신심 단체가 창설되게 됩니다.

또한 1861년 당시 공주에서 사목하던 조안노(오 베드로) 신부님은 공주 전 지역을 성모영보(예수탄생예고) 구역으로 

선포합니다.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아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키운 곳이 바로 공주입니다.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성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봉헌해 드린 특별한 곳에서 어머니께 간절한 도움을 청한다면

그 모든 것을 헤아려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간단하게 대전교구의 황새바위순교성지에 대해 포스팅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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